달팽이 요리는 파리보다 스페인이 더 맛있습니다.

산티아고에 도착했으니 기념으로 가볍게 한잔을....

 

이 때 깨달았다.

가볍지 않을거라는것을.

 

가게 주인이 한잔씩 서비스로 줬는데 왜 서비스가 돈 주고 산 것보다 독한걸까.

대성당 뒷골목 술집. 

분명 미사 전에 취하지 않을 정도로 가볍게 마시기로 했는데...

 

우린 안될거야 아마...

 

그래도 미사시간 한시간 이십분 전부터는 그만 먹고 술 깨려고 다들 노력 많이 했다.

노력이 배신한건 안비밀.

 

플래쉬로 자체 모자이크.

이때쯤부터 다들 반쯤 맛이 갔다.

 

축구 이야기를 많이 할 수 밖에 없는데 이탈리아, 스페인 애들은 루저라고 놀릴수가 있었다.

얘는 독일애라서 2014년 저 때는 놀릴수가 없었는데 이제는 놀릴 수 있다.

 

미사시간이 되서 대성당으로 다시 이동.

순례여행 후반부에 스페인 중학교 수학여행에 묻어간 덕분에 제대 바로 앞에 앉을 수 있었다.

 

사진이 흔들린건 노력이 배신해서 그렇다.

내가 언제 유럽에 있는 대성당 맨 앞에서 미사를 드릴 수 있을지도 모르고 평생 못해볼 일이 될 수도 있는데 젠장.

이 자리가 얼마나 앞자리였냐면 보통 성당은 제대 앞에 좌석이 있고 제대와 좌석 사이 빈 공간이 있는데 그 빈공간에 앉으라고 해준거다.

여기는 단체니까 좌석은 다른 먼저 온 순례자들에게 양보하라고 그렇게 해줬다고

 

뒤에 있던 한국 사람들이 나보고 쟤는 뭔데 저기있지 라는 의혹(...)의 눈빛을 쏴줌.

산티아고 대성당의 보타포메이로(대향로)

중세에는 지금처럼 수도 시설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까지 걸어 들어오면 땀과 피, 쩐내 나는 옷들로 순례자들에 몸에서 악취가 장난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래서 미사시간에 저렇게 대형 향로 분향을 통해 냄새를 지워줬다고 한다.

지금은 자본주의가 많이 묻어서 누군가 300달러 이상 기부를 해야 미사 중간에 이거 해준다고 한다.

동영상을 찍었는데 날아갔다. 그래서 역동적인 사진으로 대체 (...)

 

바로 앞에서 향로가 휙휙 날아다님.

저 뒤에는 여기 대학교에서 음악 공부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성가대.

 

분향 후에는 미사 끝날때까지 향을 계속 피워둔다.

향 냄새는 뭐 한국에 있는 성당에서 쓰는 향과 비슷한데 여기가 좀 더 맵다.

미사 끝났으니까 다시 가볍게 한 잔 하면서 곧 있을 챔피언스리그 8강전 이야기 시작.

(레알마드리드 vs 도르트문트 1차전, 레알이 이겼는데 가게 주인이 신나서 테이블마다 술 돌림)

챔스8강 1차전 끝나고 레알 뽕에 취해서 신나게 놀다보니 어느새 자정이 넘었다.

술 더 먹는다고는 하는데 피곤해서 난 먼저 자러 갔다.

 

북적거렸던 오브라이도 광장이 텅 비었다.

 

내일은 피니스테레를 가 볼 예정이다.

 

Posted by 우중간플라이
,


새벽 4시. 나갈 준비를 하는 사람들 덕분에 잠이 꺳다.

나는 원래 산티아고 대성당 5km 앞에 있는 몬테 데 고소에서 하루를 보낼 예정이었다.

그런데 군중심리의 영향인지 지금 가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일어난 김에 출발



오늘을 마지막으로 더는 화살표를 따라서 걷지 않는다.

우비도 안쓸거고 트래킹화도 더 안신는다.

배낭도 더는 필요가 없으며 침낭도 거추장스러운 짐일 뿐이다.



산티아고 공항이 근처에 있어서 그런지 오솔길 옆에는 큰 차들이 달리는 대로변이다.

숲길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랜턴 없이는 걷지 못하는 상황인데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왔다.



새벽 5시 반, 출발한지 한시간 만에 해가 뜨기 시작한다.

화살표와 마찬가지로 걸으면서 내 등뒤로 해가 뜨는걸 보는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라바코야 입구.

여기가 산티아고 전 마지막 마을이다.



새벽부터 나온 탓에 배가 너무 고파서 라바코야 마을의 바에서 아침을 먹는다.

너무 일찍이라서 안열면 어쩌나 했는데 최종 목적지 이전 마지막 마을이다 보니 새벽부터 가게가 열려서 정말 다행이었다.



아침 7시 반.

산티아고까지 남은 거리 7km. 해는 이제서야 다 떳다.

다음은 몬테 데 고소, 산티아고 시내가 보이는 산이며 마지막 목적지를 앞 둔 순례자들이 눈에 보이는 산티아고 대성당과 시내를 보며 기쁨에 가득차는 언덕이라 '기쁨의 언덕' 이라는 뜻의 몬테 데 고소라는 이름이 붙은 곳이다.



어제까지 나를 힘들게 하던 날씨는 그 동안의 고생에 보답해주듯 맑았다.

(원래 예정대로 몬테 데 고소에서 하루 머물고 갔으면 산티아고에 비 쫄딱 맞고 갈 뻔했다.)



저 사진 끝의 오르막길만 올라가면 남은 거리는 5km.



몬테 데 고소 입구



몬테 데 고소. 1993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방문 기념 탑.



스페인 학생들은 여기서 단체사진 한번 찍고 아침 식사를 하더라.

여기서 어제 같이 저녁식사를 했던 일행들과 합류했다.

'이제까지 혼자 걸었으면 마지막엔 친구와 함께있는게 좋을것 같으니까 같이 가자' 라는 말에 뭐가 그렇게 감정이 동했는지 모르겠다.

알베르게에서는 몰라도 걸을때는 혼자 걷는걸 왜 그렇게 고수했는지도 목적지가 눈에 보이는 지금은 왜 그랬었는지 잘 모르겠다. 



한달 동안 수 많은 오르막길을 올랐다.

이제 더 이상의 오르막은 없고 이 내리막길을 걸어가면 끝이다.



언덕을 거의 다 내려갈 때 나오는 몬테 데 고소 알베르게.

병영을 개조한 시설이고 침대 500개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산티아고 파라도르 선착순 10인 레이스를 할 작정이라면 여기서 자고 새벽에 출발하면 될 것 같다.



산티아고 데 콤프스텔라 입구.

생장에서 저 표지를 보고 걷기 시작한지 딱 31일만이다.



산티아고는 도착했지만 걷는게 끝은 아니다.

여기서 대성당까지 3km를 걸어야한다.



신시가지를 지나 구시가지로 들어오고 구시가지에 있는 산티아고 대학교



그 앞에는 공사중인 산티아고 대성당의 탑이 보인다.



이 문을 통과하면 오브라이도 광장. 그 앞에는



이 여행의 목적지가 서 있다.



오브라이도 광장은 순례자들, 관광객들, 순례자들을 구경하는 사람들로 붐빈다.

비슷한 시기에 출발한 사람들도 여기서 다 만날 수 있다.

한 30명 정도 인사한거 같다.

한국에서도 한번에 30명 정도랑 인사 할 일이 거의 없는데 강제 인싸행.



잠시 후 엄청 시끄러운 노래소리 들리더니 얘네들도 왔다.

얘네들 담임선생님이 12시 대성당 미사때 자기들은 맨 앞에서 미사 드리기로 되어있는데 내 일행들도 같이 들어갈 수 있게 말해뒀다고 한다.

덕분에 나름 제한구역에서 미사 드릴 수 있게 됐다. 야호.

(유럽의 고성당들은 제대 바로 앞은 통제구역인 경우가 대다수이며 산티아고 대성당의 향로미사는 순례자가 많거나 누군가 기부를 해야만 된다. 즉, 수학여행 = 단체이며 학교에서 기부 + 학생들 견학목적으로 통제구역 개방 = 얻어걸린 나는 개꿀)



성당 후문, 야고보 축일 7월 25일이 주일에 겹치는 산티아고 성년과 부활, 성탄절 외에는 정문이 닫혀있어 

여기로만 들어갈 수 있고 덕분에 사람이 왕창 몰려있는데 여기서도 인사 릴레이하느라 정신없었다.




인증서 받으러 가는데 그 짧은거리 한번 오래도록 갔다.

산티아고 순례자 사무소는 대성당 후문쪽으로 가면 바로 보인다.



순례자 인증서 받고 다시 대성당 앞으로. 

여행을 마쳤다는 안도감은 곧 알 수 없는 먹먹함으로 바뀐다.

순례를 완주하더라도 나한테 변하는건 없다는 걸 한국에서 여행 준비를 하면서도 사실 알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걸어가면서 이 여행의 끝은 산티아고 대성당이 아니라 서울에 있는 집이라는 것도 알고있었다.



33번지 순례자 사무소에는 이런 글귀가 붙어있다.


"산티아고는 세계에서 온 사람들의 기쁨이 되었다. 그래서 이 곳에 슬픔을 가지고 도착한 사람들도 기쁨을 가지고 돌아간다" 


사실 진짜 순례는 목적지가 있을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며 남이 알아주거나 알아주지 않거나 이런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진정한 순례의 목적지가 무엇인지는 걷는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일테니까 여기에 쭉 썻다가 지워버렸다.

각자 걸으면서, 그리고 목적지가 어디건 도착한 곳에서 돌이켜 보면 즐거웠다면 그걸로 됐다.



성당은 생각보다 어수선해서 별로였는데 탁 트인 오브라이도 광장은 좋았다.



아무튼 나의 첫번째 순례길은 끝났다.

대성당 향로미사가 끝나는 순간부터 관광객 모드로 들어가서 조금만 놀다가 집에 가야겠다.


이 길을 걷고있는, 앞으로 걷게 될 세상의 모든 순례자들에게 Buen Camino!.



그런데...나만 그런게 아니라 다들 그런 기분이라서 미사시간까지 3시간 남았으니까 가볍게 한잔만 하기로... 

그러나 가볍게 한잔은 마냥 가볍지는 않았는데...


-글 재주가 개미 발톱만큼도 없는 사람의 순례길 여행기는 끝.

 이제 2014년 4월 2일의 주정뱅이와 피스테라의 순례길 에필로그가 남았음.

 게을러서 햇수로 5년이나 이걸 올리고 앉아있는 내가 참 웃긴다.ㅋㅋㅋㅋㅋㅋㅋ

 망한 연재니까 다시 제대로 연재하기 위해서 조만간 다시 가보겠습니다. 


그래서 끝난 줄 알았는데 Part2에서 이어짐.

Posted by 우중간플라이
,

새벽까지 내리던 비가 출발하기 직전에 그쳤다.

오늘 목적지는 팜플로냐. 카미노에서 만나는 첫 번째 대도시. 

실제로는 이 곳에서부터 카미노를 걷기 시작하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다.

왜냐면 대도시라 교통이 편해서 + 피레네는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or 눈 많이 오면 통행불가.

 


겉 보기에는 허름하지만 이 걸 쓰는 지금까지도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았던 알베르게.




마을을 나서던 중 본 집인데 마당안에 순례자 산티아고 석상과 노란 가리비, 지팡이와 호리병 물병을 세워놨다.

카미노 선 상에 위치한 마을들은 편집적으로 느껴질정도로 집이나 도로, 마을에 가리비와 야보고상, 혹은 순례자에 관한 그림을 그려놓는다.

선조들이 남겨준 문화유산을 잘 활용하는 동시에 가지고 있는 '컨텐츠'를 잘 전승시킨다는 생각이 들었다.

있는것도 때려부수고 시멘트부터 붓는 우리나라는....음....




비는 그쳤지만 날씨는 여전히 흐림. 역시나 시골길, 산길, 마을 중간을 통과해서 걷는다.




한국사람이 많이 오기는 오나보다.

한글로 '열려있으니 들어와서 뭔가 사 먹고 가시죠 호갱님' 을 표현하고 싶었지만 그냥 저렇게 쓴 거 같은데..

실제로 난 쉴 생각도 없었는데 가게 밖에서 가게 벽에 페인트 칠하다가 쉬고 가면서 내 그림 좀 사달라고 호객행위하시는 주인장님. 



카미노 길은 이렇게 도로 옆에 따로 보행자 전용 길이 있다.

실제로 800km 구간 중 차도 옆을 걷는 위험한 상황은 극 소수.

산 하나 넘고 제법 큰 마을 보이길래 팜플로냐 거의 다 온 줄 알고 설렜는데 설레지 말았어야 했다.



가까이 와보니 이 곳은 팜플로냐가 아니고 팜플로냐의 위성도시 '트리나다드 데 아레'

다리 끝에 벽이 조금 벗겨진 저 건물이 이 마을의 알베르게라고 한다.

수도원에서 운영한다는데 시간은 오후 12시 20분. 

팜플로냐까지 가는것도 짧은 거리라 그냥 강행돌파 하기로 하고 다리를 건너는데 줄리오 일행도 마침 식사 중.

(이때부터 걷는게 익숙해져서 속도가 붙기 시작한 것 같다. 1시간 전에 출발 한 애들을 만남 ㄷㄷ)



점심을 해결하고 다시 출발하는데 뭔가 이상하다.

지금까지 산 길, 시골 길, 시골마을만 지나왔는데 길이 저렇다.

심지어 마을도 안끝난다.

(나중에 알고보니 트리니다드 데 아레는 신촌에 이대와 홍대가 붙어있듯 팜플로냐에 붙어있는 위성도시 ㄱ-)



이 다리를 건너면 팜플로냐다.

시간은 오후 1시 40분. 시에스타 전. 날씨가 슬슬 맑아진다.



줄리오 일행은 오늘 30km를 채워서 걷는다고 한다.

피니스테레까지 걸어가야해서 시간이 촉박하다고..

그래서 여기서 헤어지기로 하고 같이 사진 한 장 찍었다.


'부엔 까미노(Buen Camino)' 좋은 여행길이 되기를. 




팜플로냐의 길 거리에는 이렇게 가리비가 새겨져 있다.

알베르게 3군데로 가는 길 안내와 사수르메노르, 서쪽으로 가야 할 방향을 알려준다.





팜플로냐 시청과 대성당이 보이는 거리. 6월에 여기서 유명한 소몰이 축제인 '산 페르민 축제' 가 열린다고 한다.

물론 난 3월이기 때문에 그런거 없다.

기념품 가게마다 소 머리 모양의 기념품과 뿔나팔을 전시해놨다.

대도시답게 마트도 시에스타 ㅈ까!!고 영업중이라 식료품 조달도 무난했고 정육점에서 파는 쵸리스와 하몽이 대박이었다.

지금도 가끔 맥주 한 잔 하다보면 스페인에서 먹었던 하몽맛이 떠오를 정도...


알베르게 헤수스 이 마리아는 깔끔하고 편안하며 세탁시설에 주방에 와이파이 빵빵함과 고급스러운 외관 등 , 준 호텔 수준이었지만 놀랄만큼 저렴한 가격 7유로였다.

대도시도 왔고 그동안 고생한 나를 위해 오늘 저녁은 '메뉴 델 페레그리노' 순례자 정식으로 먹기로 한다.








주문하면 와인 한병, 바게트 빵 갖다준다.

바게트는 더 달라면 더 달라는 대로 주고 와인은 무조건 1병. 1명이 시켜도 1병. 여러명이 같이가도 1병.


보통 저렇게 코스요리로 나오고 본 메뉴는 식당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육류 or 해산물 중에서 선택 가능하다.


나중엔 닭고기 스튜나 토끼고기 등 그 동네 특산물에 따라서 메뉴 구성이 달라지고 식당마다 디저트나 주 메뉴의 종류가 다르다.

순례자 정식은 싼 동네는 7유로. 비싸면 10유로인데 1유로 대충 1,500원으로 잡으면 비싸야 15,000원 아래다.

우리나라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코스로 저렇게 먹으려면 18,000원으로는 어림도 없는 걸 보면 순례자 메뉴는 절대 사치가 아니다.

다만 내가 돈 조금 들고가서 거지같이 다니느라 많이 못 사 먹고 재료사다 해먹었을 뿐이다. 




알베르게 7유로.

순례자 정식 9.95유로.

물 & 식료품 1.92 유로.


총 18.87 유로 사용.


Posted by 우중간플라이
,



38리터 배낭. 레인커버.

춘추용 침낭. 판초우의. 슬리퍼 한 짝.

등산용 양말 4.켤레 스포츠 타월 2장, 수건 한 장. 

속옷 대체용 나이키 프로(2set). 트레이닝 탑 반팔 하나, 우븐자켓 한장.

미드레이어 한 장. 물티슈. 휴지. 세면도구. 디카 충전기. 휴대폰 충전기.

500 리터 물통 두 개. 마운틴 폴(등산스틱). 야구모자.

등산모자(우천시 착용) 


보조 힙쌕.

여권. 돈. 휴대용 랜턴. 주머니칼. 디카. 휴대폰.

볼펜. 여행일지.


3월부터 4월 스페인 낮 평균기온은 8~14. 아침 평균기온 0~3도 예상.


환전만 하면 준비 완료. 마스터 카드 한장 들고갈테니 아마 800유로 정도 할 것 같다.

그렇게 풍족한 여행이 되지는 않을 것 같다.



Posted by 우중간플라이
,

프랑스 남부 국경마을 생장에서 시작, 피레네 산맥을 넘어 산티아고 대성당 앞까지, 

이베리아 반도를 가로지르는 800km 길.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 하나인 야고보의 무덤에 관한 전설이 있는 길.

지금은 종교적 목적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거나 생각의 정리가 필요한 사람들 모두가 찾는 길이 되었고 파울로 코엘류의 <순례자>에도 언급된... 나머지는 검색해보면 다 나오니까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

걷기 열풍과 힐링이 난무하면서 이 길이 유명해지기 몇 년전부터 이 길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서른 되기전에 꼭 가야지' 라는 막연한 생각도 함께.

 

2013년 9월

출근하고 퇴근하고 사람 만나고, 평범하게 사는게 바쁘고 지쳐서 아무 생각도 없이 살고 있던 어느 날.

카톨릭 신자라면 대수롭지 않게 보고 지나가는 매일미사 표지 삽화에서 잊고있던 산티아고를 다시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사진만 한장 찍어놓고 곧 잊어버렸다.


2013년 9월 매일미사 표지. 이 크고 아름다운 사서 고생의 도화선.


2014년 1월. 

일을 그만뒀다, 성당에서 하던 청년 단체활동 마저도 생각 차이로 그만 둔 후였다.

그 과정에서 신앙적인 모독까지 당했고 내가 하지도 않은 말, 행동이 뒷 담화로 돌아다니기 시작하면서 

정신적으로 많이 힘든건 당연지사였고 한순간에 패배자가 된 기분도 들었다.

침대에 누워서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정리나 하던 어느 날, 묵혀두었던 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곧 바로 일어나서 프랑스로 가는 비행기 티켓부터 검색하기 시작했다.


2014년 2월 24일. 

1월 말에서 2월초는 홀린 사람처럼 비행기, TGV 티켓만 알아봤다. 

스페인어 하나도 모른다. 그렇다고 영어를 네이티브 수준으로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약 10,000km 떨어진 나라에서 40일안에 혼자 800km를 걸어야 한다.

나이는 벌써 서른을 바라보고 있고 당장 새 직장을 구하거나 새 직장을 구하기 위한 공부를 해도 바쁠판이다.

심지어 오라는 회사가 있었음에도 한귀로 듣고 흘리고 여기를 가려는게 정상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누군가 나에게 저 수 많은 가지 말아야 할 이유와 함께 이 돈이면 편하게 놀 수도 있는데 왜 고생을 사서 하냐고 물어보면 '지금 아니면 못 갈것 같아서' 라는 한가지 이유밖에 대답 못 하겠다. 


오늘로부터 5일 후, 나는 산티아고를 향해 출발한다.  


TGV 티켓. 파리 몽파르나스역 - 바욘 - 생장 드 피드포르


Posted by 우중간플라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