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부르고스까지만 갈 예정이다.

16km 조금 넘는 길이라 12시 전에는 도착 할 것 같다.

대도시인 만큼 여유있게 동네 구경도 하고 싶었고 살면서 명동성당만 딱 세번 가봤기에 부르고스 대성당 처럼 거대한 대성당을 천천히 오래 보고 싶었다.


그리고 12시 조금 넘어서 부르고스 도착.

그러나....



구 시가지를 에워싸는 신 시가지의 도시 형태로 부르고스 들어와서 4km 정도 걸었다.

팜플로냐하고는 비교도 안되는 대도시가 갑자기 확 나타나니까 기분이 이상했다.

나는 방금 전까지 순례길을 걷는 RPG 게임의 주인공이었는데 갑자기 게임 밖으로 튕겨 나왔고 튕겨 나온 후에 주변을 보니 그냥 유럽의 한 번화가에 떨어진 기분이랄까..




적응이 안되는 마음을 추스리며 구 시가지에 도착.



요기를 지나가면 부르고스 대성당이 나오고 주변에 알베르게가 모여있다.

다시 순례길의 세계로 로그인 한 기분.



알베르게 앞 쪽에서 본 부르고스 대성당 후면.

알베르게가 킹왕짱 좋아서 사진을 찍었어야 하는데 2시에 문여는 알베르게를 12시 30분에 문을 열러줄리가..

하는 수 없이 근처 술집에서 시간이나 떼우려고 했는데 생장에서 부터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들을 여기서 다 만나버렸다.


그렇게 반갑다고 인사를 하고 술을 한잔씩 시키다가...... 

알베르게 문 열리고 겨우 들어가고 씻고 잤다.


스페인 와서 처음으로 완벽한 시에스타....

일부러 조금 걸으면서 성당 구경하려고 했던 나의 계획은 망했다.




숙취로 아픈 머리를 달래고 뒷산을 아주 조금만 올라가면 부르고스 시내가 한눈에 보이고 술 깨는데 좋다는 말에 올라가는데.... 속았다. 

무슨 조금만이 땀 뻘뻘 흘릴 정도냐...ㄱ-


그래도 그렇게 올라가서 좋은 구경은 했다.





DSLR을 들고 갔으면 오래도록 볼만한 사진을 하나 남겼을텐데...

(하지만 무거웠겠지...매우....)






잠시 구경하다가 하산(...)

알베르게를 들어가보니까 옛날 사진들에 글귀에 뭐에 잘 꾸며놨다.

스페인 학생들이 과제를 하러 온건지 셋이서 순례자들에게 돌아가며 질문을 뭔가 하고있다.

한명은 질문을 하고 한명은 녹음을 하고 한명은 받아적고.


앉아서 구경하는 겸 무슨 말들을 하나 들어보려고 했는데(당연히 잘 못알아들음) 항상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이 때 로비에 있던 동양인이 나 혼자여서 신기했는지 나한테 왔다.

다행스럽게도 바로 직전에 얘네랑 인터뷰를 한 할배가 독일에서 온 교수라서 영어를 잘 해서 통역을 해줬다.

왜 왔냐. 혼자 왔냐. 기회가 된다면 또 올거냐. 이런 평험한 질문들이었다.

문제는 평범한 질문에 평범하게 대답하면 되는데 영어도 스페인어도 능숙하지 못해서 답이 힘들었을뿐.



인터뷰가 끝나고 시에스타도 끝났고 배고 고파져서 겸사겸사 부르고스 구경에 나섰다.

부르고스 대성당은 옛날 만화중에 태양의기사 피코라고 있다.

거기서는 성들이 거인으로 변해서 싸우는데 막 거인으로 변해서 싸울것 같이 생겼다.

성당 앞 광장도 넓고 내가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었다면 화구 펼쳐놓고 그림 그리고 싶은 성당이었다.



부르고스 성당은 앞 부분은 개방되어있고 안쪽은 돈 내고 들어가서 구경이 가능한데 순례자 여권이 있으면 공짜다.

다만 내가 순례자 여권을 안들고 나왔고 폐장 시간이 가까워져서 여기까지만...

이때부터 순례자 여권은 무조건 들고 다닌다.



성당 광장을 빠져나와서 구시가지 정문.

옛날 건물들을 허물지 않고 펜스도 안쳐놓고 저렇게 잘 조화를 이뤄서 사는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우리나라면 일단 펜스로 막고 보수는 시멘트 부어서 하다가 망하겠지.



어느새 해가 진다.

자 이제 저녁을 먹어보자. 오늘의 저녁메뉴는 라면정식. 

부르고스 가면 라면 판다고 해서 위치는 미리 찾아놨고 슬슬 라면 같은게 땡기던 시점.



심지어 쌀밥도 준다.

맛은 그냥 신라면. 내가 스페인어를 더 잘했다면 새로운 라면 레시피를 알려줬을텐데 조금 밍밍해서 아쉽지만 론세스바에스 이후 처음 먹는 라면이라서 신나게 먹었다.

아! 라면 사먹는데 라면 나오기 전에 바게트 빵도 준다. 

이 동네 사는 스페인 사람들은 매워서 잘 안먹는다고 하더라.



배도 채웠고 이대로 들어가서 자기 좀 아쉬운 마음에 산책을 해본다.




이렇게 성벽이 밝게 빛나는게 엄청 신기했다.

멀리서 불빛을 쏴서 성벽 전체가 빛을 반사시켜서 빛나는 원리 같았다.



부르고스 대성당이 이렇게 빛이 들어오더라.

성당 자체에서 불이 들어오는건 하나도 없고 성당 벽 아래 땅에 저렇게 등 심어놓은게 전부인데 이렇게 밝은게 진짜 신기했다.

그러나 일교차가 심해서 급 추워진 관계로 야경을 더 볼 수 없었다. 아쉽다.



부르고스 대성당은 밤에 이 순서로 밝아진다.



어느새 순례길 일정의 3분의 1 지점이다.

내일부터 순례길 풍경의 정점을 찍는 메세타 고원에 들어간다.





알베르게 5유로

점심식사 6유로

다음 날 식재료 6유로

저녁식사 8유로

커피 2.4유로

술값 기억안남



Posted by 우중간플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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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모레 3분의 1 지점 부르고스에서 쭉 휴식을 취하기 위해 오늘 부르고스 근처까지만 걸어가기로 하고 길을 나선다. 이상하게 푹 잠들지 못해서 비몽사몽간에 짐 챙겨서 걷기 시작. 




시작부터 즐거운(?) 등산. 의외로 올라가는 길이 짧아서 이런 경치도 감상 할 수 있었다.

새벽이나 아침 일찍 산 올라가면 풀냄새가 난다.



오늘의 목적지는 이정표에 없다.

산 후안 데 오르테가와 부르고스 사이 작은 마을이 목적지.

어느새 산티아고 콤프스텔라까진 526km가 남았다고 한다.

내일이 지나면 400km대로 내려가겠지.



비포장길이 자갈길로, 자갈길 위에 시야가 탁 트이는 순간 눈에 들어오는 스페인 내전 희생자 추모비.




산 중간에 있어서 사람이 오기 어려운 지역 같은데 생화가 있다.

비석이나 주변 상태를 보면 누군가 관리하는 사람이 있는것 같다.

전쟁으로 죽는 사람은 억울할 것이고 그 가족은 후유증을 가지고 살아갈것이다.



희생자 비석을 지나면 다시 비포장길. 

개발을 하려는 듯 나무가 베어져 있고 굴삭기, 트럭 바퀴 자국이 많이 나있다.

중간중간 물 웅덩이랑 진흙지대도 넓게 펼쳐져 있어서 짜증도 증가.

당연히 그늘은 없다. 



길었던 산길이 끝날 때 산 후안 데 오르테가 입구가 보인다.



여기 성당도 유서깊은 성당이라고는 하는데 보수공사가 한참 진행중이었다.

곧 있을 부활절에 맞춰 끝낼 거라고 한다.



성당 한가운데 성모상이 있는게 특이했다.

이 성당은 조명이 따로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오래된) 성당들에 비해 엄청 환했는데



이렇게 사방에 빛이 들어오는데 저 빛들이 중앙에 성모상을 비추고 성당 중앙에 빛이 모이는 구조라 해가 지기 전에는 따로 조명이 필요 없을 정도라고 한다. (그럼 저녁 미사는?...)



반나절 동안 산행을 하느라 지쳤기도 하고 오늘은 갈 길이 그렇게 멀지가 않아서 점심먹고 밍기적 거리다가 천천히 걷기 시작. 중간에 루트를 변형시켜서 길 위에는 나 혼자밖에 없다.

원래 예정대로면 산 후안데 오르테가, 혹은 다음 마을 아혜스에서 오늘 일정을 마쳐야 하는데 시간대도 애매하고 길 위에 사람이 있을리가 없다.



친절하게도 나무에 페인트칠을 해놨다. 

여기서 길을 잃을리는 없겠지만 너무 탁 트인 와중에 방향 표시가 없으면 불안할테니까 그려놓은 누군가의 배려겠지.



나무를 지나서 얼마 되지 않아 아혜스 도착. 시간은 13시 10분. 



산티아고까지 518km.

루트를 변형하는 바람에 여긴 지나쳤지만 다음에 또 카미노를 걷는다면 여기서 하루 쉬어보고 싶은 마을이다.

동네 자체가 아기자기하고 알베르게 세 곳 주인 모두가 출처를 알 수 없는 한국말을 구사하며 다른 동네에 비해 많이 유쾌하시다.

동네 자체의 유쾌함에 끌려서 여기서 오늘은 끝내볼까? 생각도 했지만 부르고스를 좀 이른 시간에 들어가서 동네 구경을 해보고 싶어서 계속 걷기로 한다.



아혜스에서 아타푸에르카는 그리 멀리 떨어져있지 않다.

아타푸에르카 고원을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여기서 초코바하고 물을 다시 샀다.

오후 2시 가까운 시간에 고원 등반은 부담스럽긴 하지만 못 할 정도는 아니다.



고원을 올라가기 시작한다.

왼쪽에는 지뢰밭, 오른쪽은 포도밭. 오늘 걸어가는 구역은 스페인 내전 당시 격전지였던 것 같다.



푼토 데 비스타. 십자가. 해발 1070m.



이 위에서는 부르고스가 보인다.

부르고스까지 가는 길에 지나갈 마을까지 한눈에 들어오고 철조망이 처진 방송탑, 넝마처럼 파헤쳐진 광산이 보인다.



조금 더 앞으로 가보면 누군가 돌로 이렇게 만들어놨다

여기가 현생인류 출현단계 쯤? 에서 거주구역이였나 암튼 엄청난 유적지라고 한다.

그리고 고원이라 그런지 바람이 엄청나게 분다.



물론 뭐라고 써놨는지 알 수가 없다. -_-;;



여기서 알아듣는 단어는 부르게테, 몬테스 데 나바라, 에스파냐 비스타 정도. 뭐라고 써놓은걸까.



나중에 한국와서 보니까 역광. 

오늘 걸어온 길은 물론 앞으로 갈 길까지 다 보이는 곳이라 이정표가 3방향으로 서있다.



이정표는 역시 노란 화살표가 정감있고 좋다. 

이제는 눈에도 잘 들어온다.



올라왔으니 이제 내려 갈 일이 남았다.

눈에 보인다고 가까운게 아니다. 그리고 여기 올라오면서 묘하게 십자가의 길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기분탓이겠지.



고원을 내려와서 두번째에 있는 마을 우물.

이거 로마시대부터 있었던건데 2천년동안 물이 마르지 않고 나온다고 한다.



카르데뉴엘라로 가는길에 있는 알베르게 홍보 버스화(?) ㅋㅋ

태극기가 반가웠다.




카르데뉴엘라 도착.

마을 주점 벽에 그려진 벽화가 인상적이다.

모든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는 집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오늘은 혼자 잘 거 같다. 동네 위치가 애매하니까 혼자 알베르게를 쓰게 됐다. 1인실이라니 좋군.



샤워를 하고 밥 먹으러 가면서 성당 구경...을 하려고 했으나 너무 오래되어 보수중이라 내부는 못 들어가고 외부만 구경. 어지간히 오래되긴 했나보다. 



한국에서 겨울 끝자락에 출발했고 스페인에서도 겨울이었는데 어느새 봄.

나만 혼자 다른 세상에서 있는 줄 알았는데 정신차려 보니까 계절이 바뀌어 있다. 



오늘의 순례자 메뉴. 저 위에 닭죽 생긴건 별론데 먹어보면 엄청 맛있다.

닭고기를 잘게 찢어서 와인을 넣어서 어떻게 끓인거라고 하는데 어떻게 저렇게 만든건지 신기.

아래 저 고기는 토끼고기. 약간 질기긴 하지만 평소에 자주 먹는 소, 닭, 돼지와는 다른 쫄깃한 식감이 있다.

느끼한건 함정.



내일은 부르고스에 들어간다.

15km 정도 걸을 거 같은데 하루 푹 쉬고 남은 거리, 날짜 배분을 다시 해봐야겠다.

피니스테레를 갈 생각이 없었는데 여기까지 온 거 내가 언제 대서양 끝 바다를 가보겠냐는 생각이 들어서 아무래도 전체 일정 수정을 한번 해봐야 할 것 같다.






알베르게 5유로.

식사     8유로.

음료     2.90유로.

15.90 유로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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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보낸 시간까지 합치면 집에서 떠나온지 10일이 넘었다.

마치 집에서 나서는것 같은 기분을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것 같다.

시작부터 내리막길이 보여서 기분이 좋다.

그런데 입김 나올 정도로 싸늘했던 아침이라는게 함정.



걷기 시작한지 3시간 정도 지나서 이런 내리막길을 만나면 부담스럽다.

난 무릎 수술 경력도 있기 때문에 배낭을 지고 체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긴 내리막길은 많이 힘들다.

그나마 길을 나서자 마자 나오는 내리막길은 정신 차리고 조심히 내려가면 되니까 좀 낫다.



애초에 누구랑 같이 올 생각도 아니었고 알베르게에서 다른 순례자들을 만나면 같이 먹고 친하게 지내지만 걷는 것 만큼은 혼자서 하고 싶었다.

해가 뜨기 전에 어서 그늘이 좀 있는 지역으로 걸어가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한번 주가 바뀐다.

프랑스 길에서 가장 큰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레온' 주에 들어왔다.

이 간판을 봤다는 건 순례길 3분의 1에 해당하는 지점인 부르고스에 곧 도착한다는 뜻이다.

다음에 주가 바뀐다는 표지판을 만났을때 내 순례여행은 절반이 끝나있겠지?



내 발자국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소리만 들으면서 한참 걷다보면 이렇게 다음 마을이 나온다.

'10분만 쉬고 가면 좋겠다' 혹은 물이 다 떨어졌을때 신기하게 다음 마을이 이렇게 나타나곤 한다.

옛날부터 있던 돌 다리가 많이 늙어서(?) 새로 다리를 설치한것 같다.

돌 다리는 통행이 금지되어있다.



다리를 건너면 '빌로리아 데 리오하' 라는 마을이 나오는데 참 조용했다.

어지간한 규모의 도시급 마을이 아닌 이상에야 다 조용했지만 기억에 남을 정도로 유독 조용햇던 곳으로 기억에 남는다.

이 날은 유난히 길에 대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진도 많이 찍지 않았다.

4일간 120km를 걸어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그랬을까?



벨로라도를 그냥 건너뛰고 토스 산토스까지 왔다. 

원래는 여기서 쉬어야 체력젹으로 맞지만 부활절 이전에는 알베르게가 열지를 않아서 쉴 곳이 없다.

굳이 쉬려면 비싼 호스텔에서 쉴 수도 있었으나 지도를 펴 보니 '비야프랑카 몬테스 데 오카' 에서 바로 산을 타야 한다.

이왕 타야 할 산이면 아침에 일어나서 100% 체력에서 타는게 나을것 같다는 판단에 6km 더 걸어서 '비야프랑카 몬테스 데 오카' 로 간다.



한참 걷다가 뭔 동네가 나오는데 동네 한가운데를 고속도로가 가로질러서 마을 아니고 휴게소인줄 알았다.

그런데 지도 펴보니 여기가 '비야프랑카 몬테스 데 오카' 라고 한다.


아무래도 4일 연속 약 30km씩 걸으니까 몸이 먼저 힘든걸 알더라.

식재료 1인분씩을 안팔아서 돈 아껴보려고 조금씩 먹고 다닌 이유도 체력 저하에 한 몫 했을거다.

그래서 오늘은 음식으로 사치를 한번 해보기로 한다.

식재료 비용으로만 8유로를 썻다.

지나간 한국사람이 남기고 간 쌀이 있길래 소고기 볶음밥하고 파스타를 했다.

대충 3인분은 될 것 같아 보였는데 먹기 시작하니까 음식물 쓰레기 하나 없이 깔끔하게 먹었다.

그동안 힘이 들긴 들었나 보다.



알베르게 7유로

식재료   8.41유로

          15.41유로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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